
w. 더규(@zapduckyu)

“켄마아아~우리도 가자아~마르코가 그러는데 페리로 30분밖에 안 걸린대!”
헬싱키의 호텔에서 히나타는 켄마를 열심히 설득 중이다. 오늘은 소요와 켄마의 북유럽 여행이 끝나기 2일 전.
이 둘의 북유럽여행은 순전히 충동적이었다. 4학년 2학기 취준생 켄마는 사랑과 전쟁으로 변해버린 취준스터디에 설상가상으로 중간고사를 팀플로 대체하는 전공에서 팀원의 잠수로 팀플이 솔플로 되어버리자 중간고사 전, 홧김에 휴학원서를 던졌다. 그 후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오로라를 보기 위해 북유럽으로 여행을 왔던 것이다.
아주 예전, 그러니까 소요가 도쿄로 대학 온 뒤 같이 산지 얼마 안된 어느 주말. 소요와 켄마는 거실에서 뒹굴거리며 무료하게 티비 채널을 돌리다 한 다큐멘터리에 채널을 고정했었다. BBC에서 제작한 'Joanna Lumley in the Land of the Northern Lights'. 영국 여배우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여행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소요와 함께 보며 하늘에 영롱한 오색의 비단이 펼쳐진 것 같은 장면에 실제로 보고 싶다며 다정하게 속살거렸었다.
북유럽 여행 여정은 정말 좋았었다.
나리타 공항에서 스칸디나비아 항공을 타고 코펜하겐을 경유하여 오슬로 공항까지 오며 기내에서 히나타로 인한 작은 소동도 있었다. 히나타는 츠키시마가 장거리 여행 팁으로 알려주었다며 와인을 마시고 푹 자면 금방 도착한다 켄마에게 자신만만하게 소근거렸었다. 술을 좋아하지만 술이 약한 히나타는 와인 한 잔에 취해 울먹이며 두통을 호소했고, 승무원에게 숙취해소약을 얻어 먹어야 했다. 오슬로 공항에 도착해 이를 갈며 츠키시마의 이름을 불렀지만 도쿄에 있는 츠키시마에게 닿았을 리 만무했다.
오슬로 공항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트롬쇠. 오로라 관측 예보에 맞춰 오긴 했으나 볼 수 없을까 봐 3일을 머물렀었다. 다행히도 마지막 날 하늘 위를 수놓은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10월이었지만 노르웨이의 북쪽은 이미 겨울이 찾아와 새하얀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설원 위를 초록색, 분홍색, 노란색, 빨간색 등 색색의 빛들이 섞인 오로라가 장대하게 펼쳐졌다.
와…정말 너무 예쁘다.
어떻게 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
켄마아 나 눈물 날 것 같아.
설원 저 멀리 자작나무 숲 위로 수 놓인 영롱한 비단 같은 오로라와 별들을 바라보며 켄마와 히나타는 웅장한 아름다움에 눈물이 날 것 같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히나타가 켄마의 방한복 주머니 속에서 손을 맞잡아 서로의 따스한 체온에 기대어 손끝으로, 눈빛으로 간질간질함을 함께 나누었다.
트롬쇠에서 다시 오슬로로, 오슬로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스톡홀름으로, 스톡홀름에서 페리를 타고 핀란드 투르크로, 투르크에서 기차를 2시간 타고 여행의 종착지인 헬싱키까지.
여행의 모든 과정이 마냥 좋았던 것만은 물론 아니다.
히나타는 지나치게 에너지가 넘쳤고, 켄마는 히나타의 에너지를 쫓아가기엔 버거웠다. 둘은 여행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켄마가 히나타와 단 둘이서 조용히 여행하는 걸 선호한다면, 히나타는 여행에서 마주친 여행객과 같이 다니는 제안도 거절하지 않고 즐겁게 받아들였다. 숙소에서 마주친 여행객들과 밤에 갖는 술자리도 켄마는 원래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닐뿐더러 피곤해서 꺼렸지만, 히나타는 그런 술자리나 파티들에 기꺼이 참석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켄마는 여행지에서 즐기는 것을 방해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히나타를 배웅했었다. 히나타는 켄마가 조금만 더 활발히 다른 사람들과 만남을 같이 즐겨주었으면 했고, 켄마는 휴식을 위한 여행이니 히나타와 단 둘만의 시간을 더 갖기를 원했었다.
소요는 나랑 여행 온 거잖아. 왜 나랑 더 많이 있지 않는 거야…? 난 소요랑만 있고 싶어. 둘이서 쉬고 싶다고.
켄마아, 우리 같이 여행 다닌다고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도 술자리나 파티에 켄마랑 같이 참석하고 싶다구, 하지만 켄마는 그게 싫잖아?!
스톡홀름 궁전 앞에서 대판 싸운 뒤, 그날 밤 숙소에서 히나타가 울멍울멍한 눈으로 켄마의 품에 안겨 사과하며 싸움은 일단락되었었다. 그 뒤 투르크에서 무민마을 여행도 단 둘이 같이 즐겁게 하고 헬싱키에서도 같이 사우나에서 여독을 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스톡홀름에서의 싸움 후 히나타가 켄마를 조르고 있다. 헬싱키의 숙소에서 만난 스페인 청년 마르코가 문제의 발단이다. 켄마와 히나타보다 먼저 숙소에 있던 유럽여행 중이라는 검은 머리에 그윽한 검은 눈의 스페인사람 마르코는 친화력이 매우 좋았다. 친화력 갑과 친화력 좋은 사람이 만나니 친화력은 더하기가 아닌 제곱이 되어버렸다.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마르코는 헬싱키 관광을 시켜주겠다며 켄마와 히나타의 일정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었다. 바디랭귀지가 큰 스페인 사람이어서인지 은연중에 히나타와의 잦은 스킨십에 켄마의 불만은 히나타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심해에 쌓이는 침전물처럼 쌓여갔다.
“우리 지금까지 스칸디나비아반도에만 있었자나~ 나 동유럽쪽에도 가보고 싶어~!”
아침을 먹으며, 눈치는 저 멀리 던져버린 친화력 좋은 마르코가 헬싱키에서 페리로 30분 거리인 에스토니아의 탈린에 자신과 같이 가자고 말하자 히나타는 방으로 돌아온 뒤 지금껏 켄마를 조르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도 거의 막바지인대 소요가 이렇게 원하니 어쩔 수 없지…
“응… 우리도 가 보자. 탈린.”
우와아아아아! 켄마의 대답에 등불을 켠 듯 표정이 밝아진 히나타가 켄마를 와락 껴안았다가 쪽 뺨에 버드키스를 남긴 뒤 조르르 방 밖으로 달려나간다. 마르코한테 같이 간다구 얘기 할게!
하아…… 그래도 간다 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가야겠지…. 히나타가 나간 방 안에 켄마의 한숨이 깊게 깔렸다.
히나타의 말대로 탈린까지는 페리로 30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켄마는 히나타와 마르코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 free walking tour에 강제 참여하게 되었다. 현지인이 자원봉사 형태로 하는 free walking tour의 이번 가이드는 켄마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폴란드 출신으로, 탈린에 유학을 왔다가 탈린이 너무 마음에 들어 정착하게 되었다는 가이드는 밝고 명랑하게 올드타운 곳곳에 얽힌 역사들을 흥미롭게 이야기 하며 가이드를 해주었다.
확실히 소요의 말대로 탈린은 발트 3국 중 하나답게 지금까지 거쳐온 북유럽 국가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건물들과 골목들이었다. 동화 속처럼 가위, 후라이팬, 후추 주머니 등 아기자기한 모양의 가게 간판들과 알록달록한 색색의 중세풍의 건축물들을 보며 약간은 불퉁했던 켄마의 마음도 노곤노곤하게 풀려갔다. 친화력이 하늘을 찌르는 히나타와 마르코가 가이드에게 맛집 추천과 이메일 주소를 받고 나서 켄마와 히나타, 마르코는 여유롭게 올드타운을 걷기로 했다.
선선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소요와 함께 걷는 것은 좋다. 소요 옆에 한 명만 없다면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감상이 쉴 새 없이 나오는지, 입술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정말 대단한 혀다. 소요가 내게 말을 건네려고 하면 다시 말을 낚아채는 것이 살살 속을 긁는 것이 의도적인 것 같기도 하고. 더 속을 긁는 것은 말을 하며 은근슬쩍 소요의 팔을 쓸어 내린다거나, 어깨를 감싸 안는 것이다. 그것도 내게 짓궂게 웃음을 띤 얼굴로 은근한 시선을 던지면서. 하…. 그래. 지금 화내면 여행을 망치는 것 밖에 안되니까.
히나타에게 보이지 않게 마른 세수를 하며 걷던 켄마의 저조해진 기분이 바닥을 찍은 것은 가이드에게 추천을 받아 간 레스토랑에서였다. 레스토랑 ‘aed’. 에스토니아어로 ‘정원’이라는 이름답게 커다란 창을 가진 내부의 목조 양식의 포근한 느낌의 인테리어의 레스토랑이었다. 친절한 미소를 띤 웨이터가 가져다 준 메뉴판을 보며 오후 5시가 채 안된 시각의 이른 저녁 메뉴를 골랐다.
“으으으음 진짜 맛있다! 켄마 이거 한 입 먹어봐!!”
“으응, 소요 내가 먹을게”
“푸핳 소요, 켄마도 같은 스프잖아! 내가 먹을래 내가!”
“어어어! 마르코!”
에피타이저로 나온 따끈한 토마토 스프는 오전부터 돌아다니느라 얼어있던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어 얼어붙은 기분도 흐물흐물하게 녹여주었다. 자신에게 큰 주황색 눈을 빛내며 스프를 내미는 히나타의 모습에 기분이 녹진해지려다 냉큼 히나타의 숟가락을 자신의 입으로 넣는 마르코 때문에 켄마는 얼굴에 걸고 있던 미미한 미소마저 사라질 뻔 했다.
저 눈치 없기로는 리에프가 울고 갈 놈. 아니, 일부로 나랑 눈 마주치는 거 보니 저거 저거 일부로… 쿠로오 같은 새기….
도쿄에서 히나타와 사귀게 된 후 데이트를 종종 의도치 않게 방해하던 리에프와 의도적으로 방해하던 쿠로오의 얼굴이 눈 앞에 둥둥 떠올랐다. 그들 보다 더한 놈이라며 히나타 몰래 이를 으득으득 가는 켄마를 히나타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마르코만 만면에 장난스런 미소를 띤 얼굴로 여기 너무 맛있지 않아? 하며 히나타와 폭풍수다를 나누는 와중에 종종 켄마에게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었다.
메인 요리를 다 먹어가는 중 켄마의 저조한 기분이 폭발했다.
“어? 히나타 여기 소스 묻었어!”
히나타가 어디? 라고 묻는 것 보다 마르코의 입술이 히나타의 입 가에 닿는 것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포크를 손에 쥔 채 얼어붙은 켄마에게 ‘보다시피 양 손이 포크와 나이프로 차서’ 라며 장난스럽게 윙크를 날리는 마르코. 순간 어버버 하던 히나타가 마르코의 말에 뭐야~ 하며 웃어넘기려는 순간. 분위기를 위해 억지로 얼굴에 걸고 있던 미소도 지운 켄마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히나타, 나는…. 하….”
마르코 쪽은 쳐다보지 않은 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히나타에게 꾹꾹 억누르듯 말을 다 내뱉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정처 없이 발 가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새 올드타운에서 벗어나 항구였다. 눈 앞에 까마득히 펼쳐진 발트해에는 불그스름한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황혼과 하나 둘 불빛을 밝히는 조명들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았다. 히나타의 머리 색 같은 노을을 바라보니 온갖 생각이 머리 속을 채웠다.
내가 참았어야 했나.
이제 여행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냐, 소요는 왜 그 자식이 그렇게 달라붙는 데 아무런 말도 안하고 그저 웃기만 하고.
난 그냥 소요랑 단 둘이서 맛있는 음식 먹고, 새로운 풍경 보면서 쉬고 싶었는데, 내 마음도 몰라주고, 항상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다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고… 나랑 둘이서 다니는 게 재미 없는 건 가 소요는.
한없이 기분이 땅을 파고 들어가 맨틀을 지나쳐 외핵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작은 온기가 등 뒤를 파고 들었다.
“켄마아!!”
“소요…?”
켄마 마르코 때문에 화 난 거지? 내가 멋대로 여기 마르코랑 오자 해서 화 난거야아?
등 뒤에서 바르작 거리며 파고드는 온기와 웅얼거리며 등으로 묻히는 말에 조용히 오감을 기울이며 서 있자, 등 뒤에서 들리는 말이 한 마디로 점점 수그러들었다. 미안해.
“소요는, 나한테 뭐가 미안해? 나는 소요랑 단 둘이서 다니고 싶지만 소요는 나랑 단 둘은 싫은 거지? 내가… 내가 재미 없는 사람이어서?”
두서 없는 말을 내뱉다 보니 여행을 다니며 서운했던 감정들이 치밀어 올라 울컥해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찰나, 등 뒤에 있던 소요가 눈 앞에 다가왔다. 지금 내뱉은 말들은 단지 여행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부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아주 작은 불안감. 언제나 밝은 나의 태양 소요, 내게 질려 떠나갈지도 몰라. 너의 빛을 탐내는 사람이 나 뿐일까?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리는 켄마의 얼어붙은 뺨 위로 히나타의 손이 다가와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눈물을 부드럽게 훔치었다.
“있지 켄마, 난 켄마가 너무너무 좋은데 켄마는 아직도 불안해? 나는 여행 왔으니 다른 사람들과도 같이 이야기 하고, 여행하는 게 더 즐겁다 생각했는데. 우리 켄마는 그게 아니었구나. 난 켄마랑 같이 있을 때가 가장 좋은걸?! 켄마에게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 있으면 내가 혼내줄 거야!! 그러니까아… 울지 마 켄마”
눈물 흘리는 켄마를 달래던 히나타의 말에도 어느덧 습윤한 물기가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서러움을 모두 뱉어내겠다는 듯이 서로 얼굴을 마주한 채 눈물을 뚝뚝 흘리던 둘은 눈물이 진정되자 주변의 상황이 하나 둘 인식되기 시작했다. 작은 동양인 둘이서 서로 마주보며 울고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어있었다. 따끔따끔 꽂히는 시선들에 정신이 든 켄마와 히나타는 당황해 하다 히나타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히나타가 이끈 곳은 항구의 대관람차. 누가 잡는 것도 아닌데도 관람차에 황급히 올라탄 뒤 눈을 마주친 둘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소요, 이건 어떻게 안거야?”
질문을 하는 켄마에게 히나타가 다가오더니 목 뒤로 팔을 두르며 포옹을 했다. 소요..? 의아해하는 켄마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히나타가 밝게 웃으며 말한다.
“켄마, 생일축하해!”
오늘이 내 생일이었던가? 여행에 치여 생일도 잊은 채 지냈었다. 그렇게 생일을 기대하며 챙기는 타입도 아니니까. 그래도 소요 기억해줬구나. 내려다보니 횡 했던 목에 황금빛의 장미모양으로 조각된 호박목걸이가 자리하고 있다.
“이게…? 언제 준비했어?”
켄마의 의아한 시선에 살짝 얼굴을 붉힌 히나타가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여행지에서 맞는 생일은 특별하니까, 기억에 남을만한 깜짝 파티를 해주고 싶었어! 그래서 마르코랑 상의하니 탈린 관람차 안에서 생일축하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탈린으로 오자구 켄마 졸랐던거야… 켄마 몸에 지닐 수 있는 거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호박이 켄마 눈 색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지긋이 바라보는 켄마의 시선에 말을 이어가던 히나타의 얼굴은 노을이 물들 듯 발갛게 변했다. 꼬물꼬물 손을 움직이며 부끄러움에 점차 목소리가 수그러드는 히나타에게 켄마가 다가왔다.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 발그레한 얼굴을 부드럽게 양 뺨을 감싸고 들어올리며 입 가에 미소를 띤 켄마가 히나타의 눈을 바라보며 시선을 마주했다.
고마워 소요.
나직하게 관람차 안에 울려 퍼지는 켄마의 목소리에 히나타의 얼굴은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이 변했다.
두 개의 시선이 촉촉히 얽힌다. 켄마의 입술이 히나타의 얼굴로 천천히 다가와 촉. 이마부터 눈꺼풀 위, 콧등, 양 뺨 위에 가볍게 내려앉는다. 양 손에 붙잡힌 얼굴의 두 눈은 꼭 감은 채 앞으로 다가 올 열기에 대한 묘한 기대감이 서려있다. 짓궂게 파르르 떨리는 눈초리와 입술을 감상하자 다가오지 않는 입술에 의아해 하며 주황색 눈동자가 눈을 뜨는 순간. 입술은 마지막 종착점인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안착했다.
서로의 입술의 보드라움을 음미하다 톡톡. 혀가 상대의 입술을 노크하듯 두드리며 입 안으로 들어갔다.
“응, 으흡..!”
“하아… 소요. 입, 더 벌려봐…음”
서로의 몸은 한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을 듯이 서로에게 붙어있었다. 둘의 혀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대며 난잡하게 얽히었다.
어느덧 붉은 노을은 사라지고 밤의 장막이 내려앉은 거리를 밝히는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다. 멀리 보이는 등대 불빛과 도시의 불빛들을 배경으로 관람차는 천천히 지상에서 허공으로, 허공에서 지상으로 회전하고 있다.
어느 새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관람차에 내린 둘은 손가락을 단단히 얽힌 채 마주잡으며 나섰다.
켄마 생일 축하해. 사랑해.
나직한 목소리가, 웃음소리가 화려한 불빛이 들어선 탈린의 밤거리에 흩어진다.
-뒷 이야기-
“소요, 그러고 보니 마르코는?”
“아! 맞다. 마르코는 리가로 떠나는 버스 타러 먼저 갔어. 켄마한테 미안했다고 이 쪽지 전해달라구 했는데.”
「켄마 생일축하해! 지금까지 너무 놀렸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히나타에게 닿을 때마다 입만 웃으면서 죽일듯이 쳐다보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ㅋㅋㅋ 내 장난이 너무 심했지? 나중에 도쿄든 어디서든 히나타랑 또 셋이서 마주칠 수 있으면 좋겠다. -마르코」
장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입 안으로 씹어 삼키듯 튀어나오려는 험한 말을 삼켰다.
“켄마, 마르코가 뭐래?”
“아, 쓸모 없는 말. 아무 것도 아니야. 가자 소요.”
궁금해 하는 소요의 눈빛을 모르는 척 품 안으로 끌어 안으며 걸어 나갔다.
돌아가자 우리 일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