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 동경(@hhankerz)
아침부터 요란스럽게 울리는 핸드폰 알람 소리에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인상을 확 구기며 탁자 위에 있는 것을 더듬거리며 겨우 잡았다. 내가 알람을 몇 시쯤에 해놨더라, 홀더키를 눌러 화면을 켰다. 화면 안에는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쇼요의 사진이 밝게 비추어지고 있었다. 잠결에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선 화면 안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몇 초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또 다시 울리는 알람 시계를 급히 꺼버렸다. 오전 수업부터 있었던 지라 귀찮지만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키고선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씻을려고 윗 옷을 벗자마자 띠링, 하고선 울리는 알림음에 확인해보니 생일을 축하하는 문자와 sns 반응 등이 눈에 들어왔다. 아, 오늘 나 생일이었구나. 최근에 과제로 인해 바빴던지라 제 자신의 생일이 다가오는지도 생각하지 못한 나였다. 사람들의 메세지를 대충 눈으로 확인하다가, 제일 중요한 쇼요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다. 바빠서 내 생일인지 몰랐던 건가. 딱히 크게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인 관계였기에 서로에 대한 정보는 그 누구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있던 우리였다. 물론, 충분히 깜빡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긴 했지만… 서운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크게 서운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나중에라도 알고 축하해주면 됐지, 뭘 더 바라는가. 제 옆에 있어주는 모습만으로도 얼마나 한 없이 사랑스러운 사람인데. 아까와 다른 쇼요의 사진이 배경화면에 보여지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기 마련이었다. 오늘도 너는, 나를 보며 맑은 웃음을 보여주겠지. 이젠 하루하루가 행복 할 수밖에 없어서 큰 일이 될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그로 인해 치유가 되어버리니까.
젖은 머리를 탈탈 털어대다가 수건을 세탁물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원래 편한 복장을 좋아하지만, 나름 혼자만의 작은 기대가 있었던 것인지 쇼요가 제일 좋아하는 차이나 카라로 된 셔츠를 꺼냈다. 머리로 이미지를 그려가며 옷을 꺼내 입고, 잘 차고 다니지 않았던 시계 또한 꺼내들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지그시 쳐다보다가 입은 옷차림에 풀은 머리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고선 깔끔하게 묶었다. 그래도 짧은 머리에 약간 잔 머리들이 흘러내리긴 하였다. 개의치 않고 가방을 집어 들고선 문을 나섰다. 곧 가을을 맞이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지 오전 날씨는 약간 쌀쌀했다. 가방 구석 안에 박혀있던 담배 곽을 집어 드니, 꽤나 가벼워진 무게가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가다가 하나 사야겠다, 라고 생각하고선 몇 개비 남아있지 않은 담배를 하나 물었다. 불을 붙이며 걸어가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지만, 마음은 그렇게 편하지 않았다. 연락이 뭐라고, 계속 연락이 오지 않은 것을 계속 신경쓰고 있었다. 심란한 마음을 풀지 못하고 바로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나름 꾸민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웬일이냐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정작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연락을 남긴 것에 아직도 답이 오지 않았다. 늦잠이라도 자는 것인지, 강의실을 들어 온 후에도 답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원래 잠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교수님이 들어오신 후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오늘 따라 더 심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15분 정도 지난 후에 밖에서 울려퍼지는 쿵쾅대는 발소리에 자연스레 옆자리를 정리하게 되었다. 조용히, 강의실 뒷문이 열리더니 뻘쭘한 지 미소를 보이며 얌전히 들어오는 쇼요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교수님은 큼큼, 거리며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 누굴 찾는 듯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차려입은 나를 보고선 눈이 커지기 바빴다.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에 놀란 것인지, 아침부터 혼자 얼굴을 붉히는 것에 바빠 보였다. 방금 뛰어와서 그런 건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부여잡고 옆으로 조심히 다가오는 모습이 병아리 같았다.
“켄마, 오늘따라 더… 엄청, 막…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진짜, 빛나. 원래도 잘생기긴 했지만, 오늘은 더 잘생긴 거 같아!”
“…고마워, 쇼요. 지금 입은 것들, 니가 제일 좋아하는 옷들이잖아.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니 그렇네, 혹시 나 때문에 입은 거야?”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이 귀여울 수밖에 없었다. 귓가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지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니 그새 좋다고 해실거리며 웃어 보이는 표정을 보고선 한 쪽 볼을 잡아당겼다. 지각한 대가로 받은 벌이지만 방금 전의 행동 또한 귀여운 나머지 제대로 혼내지도 못하고 수업에 집중하라고 볼펜으로 탁탁, 칠 뿐이었다.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선 주섬주섬 자신의 가방에서 책을 꺼내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안 그런 척, 고개를 돌리고 전공 책만 겉으로 읽고 있었다. 쇼요가 온 뒤에는 수업에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자꾸만 흘깃, 옆으로 가는 시선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이래서 같은 수업을 들으면 전혀 집중을 못하겠다.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 켠에서 너무나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졸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는 게 얼마나 눈에 선하게 보이는지, 토닥거리며 상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혼자 수업에 집중 안하고 있다고 느껴지자마자 다시 전공책에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 손잡고 싶다. 옆에만 있으면 잡고 싶고, 더 가까이 붙어 있고 싶은 것을 억누르며 집중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으면 손을 잡아버릴 것 같았다. 가까이 있는 것이 좋긴 하지만, 이렇게 옆에 있으면 더 붙어있고 싶어지는 욕심을 참기 힘들었다. 펜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귀로는 강의를 듣고 있지만, 눈의 시선은 칠판을 보다가 다시 쇼요에게 고정이 되어버리는 것을 반복하기만 했다. 욕구를 간신히 참아내고 나니 피곤했던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서 시계 초침을 확인하니 벌써 오후를 알리는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 후에 수업을 체크하고 있던 사이에 쇼요가 내 손목을 잡고선 흔들어대며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켄마, 오늘 점심 나랑 단 둘이서 먹을래?”
“…좋아.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쇼요?”
“난 켄마가 먹고 싶은 거!”
방긋 웃어보이며 말하는 표정이 어찌나 귀여워 보이던지, 그 반응에 조금 장난을 쳐볼까 하고선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러면 너? 그 말에 얼굴을 붉히고선 장난치지 말라며 팔에 솜주먹을 팡팡 내리칠 뿐이였다. 전혀 아프지 않은 것에 또 한 번 귀엽다 생각하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과 친구들과는 잠시 헤어진 후에 다시 강의실에서 보기로 약속하고 학교 밖으로 나갔다. 미리 먼저 나온 학생들이 주변 음식점들을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자리를 찾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이기에 몇 군데를 둘러보다가 점점 지쳐보이는 쇼요의 손목을 갑자기 낚아채고선 지하철로 성큼성큼 대려갔다. 이러다간 점심도 못 먹고 다시 강의 듣게 생겼으니 다른 곳이라도 가서 밥을 먹이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그의 표정은 무한의 물음표를 달고 있었다. 쇼요는 계속 그렇게 나를 따라오다가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레 지하철 기계에 카드를 찍고 있었고, 바로 온 지하철을 운 좋게 탑승하였다. 점심 시간이여서 그런지 자리가 널널해서 바로 앉아서 갈 수 있던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며 둘은 자연스레 자리에 앉았다.
“…켄마, 우리 어디가길래 지하철까지 탄거야? 밥 먹으러 나온거 아니였어?”
“학교 주변에서 먹을려고 하다간 점심 시간 다 지날꺼 같기도 하고, 너도 지쳐보이는거 같아서 그냥 다른 곳 가서 먹일려고 탔어. 싫어?”
“당연히 싫은 건 아니지만….”
“쇼요도 좋아할거야. 쿠로가 추천해준 곳인데, 되게 맛있대.”
맛있는 것을 사준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매우 불편해 보이고 안절부절 못하는 쇼요의 행동에 약간 이상하게 여기긴 했지만, 수업 시간에 늦을까봐 걱정되는 것으로 알고선 크게 신경쓰지 않고선 자연스레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분명 큰 두 눈을 꿈뻑거리면서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는 표정을 할 것이 뻔하였다. 항상 이런 작은 스킨쉽에도 매우 깜짝 놀래면서 긴장하는 모습이 아기 동물 같았다. 혹시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긴 하였다. 오늘 수업에도 지각하고, 졸지도 않고 해서 피곤한 사람은 오히려 이 사람일텐데 내가 기대면서 편히 가는 건 너무 양아치같은 짓 같아보여서 기대고 있던 머리를 들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다시 정자세로 앉고선 억지로 쇼요의 머리를 조심히 잡고선 내 어깨에 기대게 하니 소녀처럼 부끄러워한다. 이게 무슨 짓이냐면서 말을 더듬는 행동이 순수한 어린 소녀 같았다. 피곤한건 내가 아니라, 쇼요인 거 같아서. 맞는 소리였는지 크게 반응을 하지 않았지만, 고맙다는 표시로 내 손을 살포시 잡아온다. 손의 체온이 따스하다. 많이 피곤했던 것인지 금새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버린 모습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뭐하느라 이렇게 늦게 잔걸까, 내가 그렇게 늦게 자지 말라고 주의를 준 뒤로는 일찍 잘 자고 했는데. 나중에 물어봐도 늦지는 않겠지. 조용히 잘 자고 있는 것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에 가방 안에 있던 게임기를 꺼내 들었다. 도착하려면 아직 몇 정거장 남았으니 시간 때우며 있을까.
도착하기 2개 정류장 전이였다. 이쯤이면 깨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깨워야 되지만 깨우기 미안 할 정도로 너무 곤히 잠들어버린 것 같아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까, 그냥 이대로 냅둘까.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어차피 점심을 먹고 가도 수업 시간에는 늦는 것이 이미 확정이었다. 혼자 생각하며 고심하고 있던 상황에 지하철 방송에 귀를 기울이니 벌써 내려야 할 정류장이 다가오고 있었다. 속도를 낮추고 나서야 자동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사이 안에서 계속 생각하던 끝에, 문은 닫혀버렸다. 아, 결국에는 그냥 지나쳐버렸다. 상황이 뭔가 골치 아파진 기분에 뒷머리를 긁적이게 되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뒤척이는 쇼요를 보고선 행동을 다시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뭐, 별로 크게 상관되진 않으니까 문제 될 상황은 없었다. 새근새근 잘 자는 모습이 영락없는 유치원생 아이 같다. 피곤할 텐데 더 재운다고 생각하자, 라고 생각하고선 아무 말 없이 곤히 잠든 그를 바라보기도 하면서 조용히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지금 이런 순간도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기에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마지막 정거장까지 도착해버렸다는 점이다. 이럴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나 또한 게임에 열중해버린 나머지, 허둥지겁 거리면서 정류장을 확인했다. 마지막 종점 되기 2개의 정거장이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쇼요를 다급하게 깨웠다. 수업은 물론 점심시간이 지나버렸다는 것을 깨닫고선 아직 잠에서 덜 깬 그를 대리고 바로 지하철에서 내려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일어나자마자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던지라 어리둥절하며 여기가 어디냐고 먼저 물어오는 답변에 뭐라 답하지 못하고 미안한 마음에 시선을 맞출 수 없었다. 일단 지금이 어디인지 먼저 설명하고선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어버렸는지 설명을 해주니 놀랬는지 눈을 크게 뜨면서 입 또한 크게 벌린다. 아, 어떻게 하지.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하기만 했다.
“괜찮아, 켄마. 크게 상관은 없지만… 학교에 두고 온 물건들이 많아서. 그 것 때문에 그래.”
“지금이라도 학교로 다시 갈래?”
“아니야. 일단 원래 가려던 곳부터 가자. 학교는 나중에 가도 되니까.”
“미안해, 쇼요.”
“전혀 미안해 할 거 없어, 켄마! 진짜 괜찮으니까 너무 신경쓰지마.”
손사래를 치다가 손을 맞잡아 오는 행동에 미안하면서 고마울 뿐이었다.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던 도중, 지하철이 들어 온다는 방송에 경계선 앞 쪽에 바로 서서 기다렸다. 잠을 충분히 잔 것인지 아까보다 훨씬 더 맑은 정신으로 보이는 쇼요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 와주니 자연스레 대화가 계속 이어져갔다. 사귀는 사이인데도 사소한 것에도 생각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 그 만큼 서로를 많이 배려해주고, 아껴 주는 게 확실하게 느껴진다. 그 만큼 많이 좋아하고, 애정하는 거니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다 무관심이었겠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먼저 말을 걸어 와주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원래 숫기가 없었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과도 말을 많이 나누는 편도 아니었기에 조용히 구석에서 게임이나 할 뿐이었다. 그를 만난 후에는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말을 걸어 와 주는게 전혀 귀찮지 않기도 했고, 오히려 마음 한 켠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나에게 이렇게 끊임없이 관심을 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쿠로오와는 약간 다른 느낌이랄까. 그런 것에 나 또한 마음이 움직이고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 이렇게 서로 마주보며 즐겁게 이야기 하는 날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려야 할 정거장 안내 방송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이번에는 정거장을 제대로 확인하고선 하차하였다. 점심시간 후였던 지라 사람이 매우 널널하게 있던 점이 좋다고 생각했다. 원래 사람이 북적이면서 많은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걸 이미 알고 있던 쇼요는 나를 배려해주기 위해 데이트 장소를 항상 미리 사전에 조사하고 찾아가는 경향이 생겼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구석에 자리한 카페나 조용하고 한적한 공원과 길을 알아보고선 함께 가자면서 얘기 해주는 것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나를 위해주는 마음이 너무나 예뻤다. 계속 손을 잡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눈길로 인해 밖에선 스킨십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다. 물론 하고 싶지만, 아직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그렇게 고운 쪽이 아닌지라 주춤하게 되어버린다. 나는 상관없었지만, 쇼요가 괜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될까봐 자제하게 되었다.
겨우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쿠로가 전에 알려줬던 곳을 다시 확인하고선 핸드폰 지도로 찾아갔다. 시간이 많이 지난 만큼 빨리 움직이는 게 좋다고 생각되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데 왜이리 힘이 쭉 빠져나가는 건지 빨리 집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그래도 나름 차려 입고 나오기도 했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중요한 일인 만큼 오늘은 힘 좀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순수하게 웃어 보이는 쇼요의 얼굴을 보자마자 똑같이 미소를 짓게 되버렸다. 이 순간을 계속 만끽하고 싶다. 항상 같이 함께하고 싶은 사람, 내게는 제일 첫 번째인 사람, 매일 내게 생일 같은 기분을 들게 해주는 사람.
음식점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역 주변에 있기도 했고, 사람도 많이 빠져나간 상태여서 바로 자리를 잡고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쿠로가 맛집 같은 곳은 잘 찾아내는 성격이었던 지라 믿을만한 정보이기도 했고, 오늘은 더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기도 했기에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까부터 자꾸 안절부절 하면서 누군가에게 급히 연락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학교에 짐 놓고 왔다는 것 때문에 그런지, 얼마나 그리 중요한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신경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나 또한 같이 신경 쓰게 되었다. 메뉴를 고를 때도 반응을 늦게 하면서 휴대폰만 쳐다보는 것에 계속 거슬리게 보여 직접 물어 볼 수도 없고, 답답하기만 하였다. 그로 인해 대화 또한 단절된 지는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시킨 음식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고, 그 순간 알림음 소리에 쇼요가 재빨리 문자를 확인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선 드디어 해결이 되었다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선 나온 음식에 눈독들이기 시작했다. 금새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선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끔 보면 단순하게 보여지는 것도 매력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보는 내가 속이 타들어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게 된다.
“진짜 맛있다, 쿠로오 씨가 추천 해준 곳이라고 했지? 여기 다음에 또 오자, 켄마!”
“그렇게 맛있어?”
“엄청! 켄마, 자. 아, 해봐.”
자신이 직접 음식을 담은 숟가락을 내미는 모습에도 사람이 반할 수가 있을까, 지금 내 상황이 그렇다. 온 몸 전체에서 내 뿜는 사랑스러움을 어떻게 감출 수 있을까. 괜히 수줍어지는 기분이다. 아, 입을 벌리며 다가가니 직접 먹여준다. 맛있지? 하면서 물어오는 질문에 당연히 맛있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에 그리 신경을 썼던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어대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나 또한 같이 신경 썼다고 생각되어 말을 묻어두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급히 먹어대는 게 체할까봐 걱정되어 중간중간 시킨 음료를 건네주었다. 그 때마다 헤, 하고선 웃어 보이는 표정이 천상 애같다. 이렇게 보니까 애 하나 키우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만큼 순수하다는 것이겠지. 그 생각을 끝으로 포크를 들었다.
음식을 다 먹은 뒤에 기분이 좋은지 가득 찬 자신의 배를 손으로 팡팡, 쳐대면서 나오는 쇼요의 모습을 보고선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배도 불렀겠다, 이제 어딜 가면 좋을까. 이렇게 될 생각을 아예 안하고 있었던 지라 어딜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거기에 이제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는 지라 사람들 또한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혼자 고민하고 있던 사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걸어오는 쇼요를 보고선 갸우뚱 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 켄마, 미안한데 내가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헤어져야 될 거 같아. 미안해… 오늘 저녁 너무 맛있게 먹었어.”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정신 차리고선 괜찮다고, 걱정 하지 말라고 밖에 말하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내뱉다가 급히 지하철로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조용히 반대편으로 걸어 나갔다. 가방 안에서 꺼낸 담배 곽 안에는 돗대 하나만 남아있을 뿐이였다. 그 마저 꺼내 입에 물었더니, 빈 곽이 되어버렸다. 몇 초 쳐다보고 있다가 눈에 보인 쓰레기통에 대충 던져 넣었다. 불을 붙이고, 피곤한 한 숨을 내뱉으니 연기가 이리저리 흩어지기 바빴다. 오랜만에 찼던 시계는 이제야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에 바로 풀고선 가방 안에 처박아 넣었다. 지하철로 가기엔 환승하기 귀찮아, 한 방에 가는 버스를 타러 정류장까지 힘없이 터덜거리며 걸어 나갔다. 알림음이 울리는 소리에 핸드폰을 확인하니, 생일 축하한다는 친구의 문자였다. 확인하자마자 바로 다시 꺼버리기 바빴다. 생일이여도, 평소와 달라질게 하나도 없는데 뭘 그리 축하한다는 것인지. 생일이어봤자, 그냥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거밖에 더 되는 것은 없어보였다.
무슨 기대를 한 것일까. 괜히 나 혼자만 기대에 가득 차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손 내밀고 있던 것이 문제였다. 기대감과 다르게 아무 것도 돌아오는 것이 없으면 실망하게 될 게 분명한데, 혼자서 무슨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인지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챙겨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냥 같이 있어주는 것도 행복한데 왜이리 오늘 하루가 서운하게 느껴질까. 그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아직 이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점을 보면 나도 아직 어리숙한 모습이 많이 있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괜한 마음에 버스를 타면서 신경질적으로 담배꽁초를 버리고 머리를 풀고 헝크리며 탑승하니, 몇몇 사람들이 쳐다보다 다시 시선을 돌렸다. 창가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틀었다. 밤공기가 차게 느껴진다. 쇼요가 오늘 따뜻하게 입고 왔었던가, 괜히 얇게 입고 와서 감기 안 걸렸으면 좋겠는데. 혼자 생각에 잠긴 상태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번 정류장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정거장 알림 방송에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힘겹게 떴다. 아, 벌써 다 온 건가. 다행히 다음 정거장인 것을 확인하고 내릴 준비를 하였다. 잠깐 잠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몸은 이미 피곤에 찌들어져 있는 것 같았다. 한 것도 없는데 뭐가 이리 정신적으로 피곤한 건지 모르겠다.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정돈하고 머리를 다시 묶었다. 딱 맞춰서 흘러나오는 알림 방송에 버튼을 누르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삐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하차했다. 입을 쩍, 벌려대며 하품하면서 집까지 걸어갔다. 내일이 쉬는 날이라서 그런지 동네는 한적하고 조용하였다. 다 놀러 나가느라 바쁘겠지. 빨리 집 가서 게임 충전시키고 깬 후에 뭐라도 시켜 먹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야식 메뉴를 정하기 바빴다. 뭐 먹지, 이런 거 혼자 잘 못 고르는데. 알아서 생각하다 보면 시키긴 하겠지, 하면서 별 생각 없이 걷고 있었는데 바로 앞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딱 생각했던 시간에 왔네.”
“…쇼요?”
두 손에는 촛불을 킨 케이크를 들고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까 해야 할 일이라는 게 이거였던 걸까. 깜짝 놀랄 정도의 돌발 행동이였던 지라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모르겠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내게 걸어오는데 발소리에 맞춰 두근거리기 바빴다. 히죽 웃어 보이며 내게 케이크를 건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켄마, 생일축하해!”
그 말 하나가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몰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에게 듣는 축하 메세지는 황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준비 안 해도 되는데, 그냥 오늘 하루 같이 즐겁게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큰 선물이라고 생각되었다. 기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벙 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촛농이 떨어질랑, 말랑 하는 것을 보고선 빨리 소원 빌고 촛불 끄라며 재촉하는 쇼요의 말에 얼떨결에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내년에도 쇼요와 함께 보낼 수 있게 해주세요. 그 후에 후, 하고선 촛불을 껐다.
길거리에 계속 서 있을 수는 없었기에 케이크를 다시 조심히 상자 안에 넣은 뒤, 챙겨 온 생일 선물들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면서 여태까지 자신의 상황을 알려주는데 웃음이 자연스레 났다. 점심시간 후에 선물을 짠, 하며 전해주고 싶었지만 다른 쪽으로 가는 바람에 학교 사물함에 보관해놨던 선물을 놓고 올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괜히 마음이 불안해져 같은 과 친구에게 부탁해 지하철 사물함에 보관을 한 뒤, 나보다 더 빨리 집에 도착해 놀려줄 계획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해준 것에 너무나 감사 할 뿐이었다. 고맙다는 말과 동시에 집 문을 열어주니, 바로 냉장고에 상자를 보관하고선 이리 와보라며 손목을 잡고 거실 소파에 앉혀놓는 쇼요였다. 도대체 뭘 그리 산 것인지 생일 선물이 한가득이었다. 자신이 하나씩 꺼내며 설명 해주겠다며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단 애들한테 부탁 한 롤링페이퍼! 다들 켄마 생일을 얼마나 축하해줬는지 몰라. 꼭 간직해야 돼. 이 편지는 내가 켄마에게 쓴 건데, 나 없을 때 읽어봐. 부끄러우니까. 진짜 선물은 이거! 켄마가 제일 갖고 싶어 했던 게임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면 가서 바꿔도 돼! 그리고 이건 보드게임인데, 계속 게임기만 보면 눈 나빠지기도 하고 하니까 하나 사왔어. 앞으로 나랑 하면 되니까! 저번에 퍼즐에도 관심 보이는거 같아서 퍼즐도 하나 사고, 또 뭐 있더라….”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 쇼요.”
도라에몽처럼 계속 나오는 물품들을 보고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준비 안 해도 됐는데, 괜히 미안해졌다. 이렇게 받을 정도로 잘해주지 못한 거 같은데 생일이라서 복 받았나, 나. 자기가 더 신난 듯이 말하는 모습이 생일인 사람이 오히려 내가 아닌 그로 보여졌다. 그러다 갑자기 내게 손을 뻗는 것을 보고선 자동적으로 똑같이 손을 건네었다. 다른 선물들과 다르게 작은 선물 상자를 열더니, 안에 있던 팔찌를 꺼내었다. 심플한 디자인의 실팔찌였다. 빨간색 색상이 고교 시절, 네코마를 생각나게 하였다. 내게 직접 채워주는 쇼요의 손목에도 똑같은 디자인의 주황색 실팔찌가 보였다. 풀렀다, 착용했다 하는 게 매우 쉬워보였다. 서로 같은 쪽에 채워진 팔찌를 보다가 손을 맞잡았다. 잡힌 손은 역시 따뜻했다. 확 잡아당기고선 손등에 입을 맞추니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나머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 바빴다.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니, 바로 앞에서 마주친 눈이 동그랗게 떠있었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고선 당황한 상태로 애플 파이를 사왔다며 보관해야 하지 않냐고 하는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저녁 먹고 나서 케이크랑 애플 파이를 먹자고 하니 알겠다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소파 옆을 툭툭, 치니 애완견처럼 바로 옆으로 다가와 앉는다.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냐, 자신이 사겠다 하는데 열심히 핸드폰으로 주변 음식점을 찾아보는 행동을 물그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또 밥 먹고 그냥 보내기는 싫어지는데. 벌써부터 헤어질 생각이 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쇼요가 간 후에 이 집 안에 혼자 남겨지기 싫어졌다. 물론, 맨날 혼자였긴 했지만 오늘은 혼자서 지내기는 싫다고 해야할까나. 집 안이 조용해서 그런가, 리모콘을 집어 들고선 티비를 틀었다. 그 와중에도 뭘 시킬지 혼자 알아보고 있는 것을 계속 쳐다보게 되었다.
“저녁에 튀김 종류는 별로일라나, 밥이랑 같이 먹어도 되니까 크게 상관….”
“쇼요.”
“뭐 먹고 싶은 거 생각났어, 켄마?”
“…그건 아닌데, 오늘 자고 갈 수 있나 해서.”
갑작스러운 제안에 눈동자를 굴리다가 일단 시키려고 했던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나와 시선을 맞췄다. 싫다고 하면 굳이 잡지 않겠지만, 고민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되었다. 티비를 켜지 않았으면 매우 조용한 상태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미리 켜놓은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꿈뻑거리며 쳐다보다가 놓은 손을 다시 잡고선 내 어깨에 기대어왔다. 살짝 옆을 쳐다 보니 귓가가 발그레 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이 상태에선 굳이 답변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제스처였다.
“쇼요, 밥 먹고 보드 게임 할까.”
“케이크도 먹고, 애플 파이도 먹은 후에 하자.”
“배 터지겠다.”
“난 더 먹을 수 있는데?”
일상에서 볼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티비를 시청하게 되었다. 음식이 도착하기 전까지 기다리는 순간에도 설렐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혼자 궁시렁 거리면서 속상해 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이렇게 자신에게 잘해주는 애인인데, 이보다 더 잘해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말고는 없겠지. 오늘 하루도 두근거리게 해줘서 고마워, 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