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 헤다(@perry_0127))

분명 성인이 되고 나서는 배구 안 했던 것 같은데. 켄마는 눈앞에 진열되어있는 배구화를 내려다보며 그리 생각했다. 쓰지도 않을 배구화를 고르고 있다는 점에 작은 의문이 생겼다. 그는 가게 안을 둘러보다가 한쪽에서 신발을 보고 있는 쇼요를 발견했다.
아. 쇼요 걸 사러 온 거구나.
금방 해결된 의문을 바닥에 내버리며 그는 쇼요에게로 다가갔다. 누구보다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는 쇼요의 얼굴에 켄마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골랐어?”
켄마의 물음에 쇼요가 고개를 저었다.
이거랑 이거 두 개가 고민 돼.
쇼요는 이건 어디랑 어디가 좋고 저거는 어디랑 어디가 좋다며 켄마에게 하나하나 얘기해주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켄마는 둘 중 하나를 가리키며 그 배구화가 더 나을 거 같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쇼요는 켄마의 제안에 일절 거절 없이 수긍하고는 곧바로 카운터에 있던 점원을 불렀다. 그는 점원과 이것저것 얘기를 하고 사이즈에 맞춰 가져온 배구화를 신어본 후에야 그것들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켄마는 쇼요의 옆에 서서 가만히 쇼요가 계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쇼요가 계산하는 동안 잠깐 가게의 통유리 너머를 보았다. 길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켄마는 다시 쇼요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조금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게 어디에도 점원과 쇼요가 보이지 않았다. 아까까지 손닿을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환영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 잠깐은 정말 짧은 시간이었기에 어딘가로 이동하고 말고를 따질 수조차 없었다. 켄마는 카운터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한 켤레의 배구화를 보다가 걸음을 옮겨 가게 내에 있는 문들을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어디로 갔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열어볼 수밖에 없었다. 모든 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어느 곳에도 쇼요는 없었다. 켄마는 가게를 한 번 더 둘러보다가 가게 출입문으로 갔다. 조금 초조한 기색이 있는 걸음으로 걸어가 문을 잡고 열었다.
가게 밖에는 쇼요가 있었다. 있긴 했지만, 쇼요가 있긴 했지만, 쇼요가 너무 많았다. 길거리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쇼요로 바뀌어 있었다. 똑같은 얼굴로, 똑같은 키로, 똑같은 걸음걸이로 제각각 다르게 움직이며 길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켄마는 다시 가게 안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다시 길거리를 보았다. 수많은 쇼요가 걸어다니고 있었다.
“쇼요.”
혼란 속에서 신음처럼 흘린 이름에 모든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켄마를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시선들에 켄마가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발꿈치에 돌멩이가 채였다. 그 돌멩이는 적막감 속에 홀로 도르륵 굴러가다가 하수구 속으로 빠졌다. 하수구 속 고여있던 물과 돌멩이가 마찰되는 소리가 들렸고 그와 동시에 켄마의 발밑이 마른 진흙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켄마.”
눈을 뜨자 익숙한 집안과 쇼요의 둥근 눈매가 보였다.
“아직 해도 다 안 졌는데. 이렇게 자다간 밤에 못 자.”
침대 머리맡에서 허리를 수그려 켄마를 내려다보고 있는 쇼요의 모습에 켄마는 가만히 눈만 깜빡였다.
금방 돌아온 듯 쇼요의 갈아입지 않은 옷에서 옅게 바람 냄새가 났다.
“켄마 가위 눌렸어? 아까 좀 끙끙거리더라.”
익숙한 얼굴,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분위기에 켄마는 안도감을 느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쇼요로 가득한 꿈을 꿨어.”
한껏 잠긴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쇼요가 헤실헤실 웃었다. 켄마의 꿈에 자신이 나왔다는 것이 마냥 좋은 모양이었다. 켄마는 꿈 속 자신이 쇼요가 없어진 것만으로 얼마나 불안해했는지를 알고 있었기에 웃고있는 쇼요가 괜히 또 괘씸해보였다. 그는 팔을 뻗어 쇼요를 잡아끌었다. 그 힘에 쇼요가 중심을 잃고 켄마의 몸 위로 풀썩 엎어졌다. 켄마는 쇼요가 채 일어날 새도 없이 그대로 꽉 끌어안았다.
“쇼요는 한 명으로 충분해.”
그는 쇼요의 체향을 한껏 들이키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쇼요가 저녁 먹어야한다며, 켄마 또 자면 안 된다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렸지만 켄마는 쇼요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한껏 편안해진 얼굴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