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 Sogno (@sogno__)

밤하늘에 가득 수놓아진 별들이 저마다의 빛을 뿜으며 반짝인다. 낮에는 제 몸을 꽁꽁 숨긴 채 태양에 가려져 있다 불쑥 고개를 드미는 아름다움에 탄성을 자아냈다. 그건 켄마의 어깨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던 히나타도 다를 바가 없다. 팔을 뻗어서 하늘의 별을 감싸 쥘 것처럼 손을 쥐락펴락하다 긴 한숨을 내뱉는다.
히나타 집 옥상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극히 드물었던 탓에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앞집에 사는 히나타가 불쑥 제 집으로 들이닥쳐 하는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켄마, 같이 별 보러 나가자.
귀찮다는 의미의 으쓱임이었다. 이렇게 선선하고 좋은 날 굳이 나갈 필요가 있냐는 뜻도 담겨 있었다. 고집스러운 켄마와 마찬가지로 히나타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하늘에서 빛이 쏟아지는 것만 같아―’
히나타에게 이기지 못한 켄마는 손이 붙잡힌 채로 앞집 옥상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히나타를 상대로 이겨보려고 했단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모두가 잠들어 적막이 내려앉은 동네에는 두 사람의 목소리만 조용조용히 울려 퍼졌다. 가을밤 바람이 꽤 쌀쌀한 탓에 켄마의 어깨에 기댄 채로 그의 팔을 감싸 안았다. 마냥 차가울 것 같던 몸이 히나타의 체온과 만나자 따뜻한 열기를 내뿜는 탓에 조금 전의 추위는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있지, 켄마.”
고개를 살짝 든 히나타가 켄마의 턱 끝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그에 대답이라도 하듯 고개를 살짝 내린 켄마가 두 눈을 깜빡였다.
“가장 소중한 날 뭘 하고 싶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 해봐! 설마, 게임을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안 봐도 알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잇는 말에 켄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게임을 좋아하고 손에서 놓지 않는다지만 가장 소중한 날까지 게임기를 붙들고 있을 생각은 없다. 단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지 못한 것일 뿐이었다.
“쇼요, 그건 아냐.”
단호하게 떨어지는 켄마의 대답에 장난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꽤나 경쾌하다. 해맑은 히나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켄마가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가장 소중한 날 하고 싶은 것이라…….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섞여드는 삶을 선호했던 탓에 특별하게 여기는 날 또한 없었다. 그나마 가장 뜻 깊은 날인 생일 때도 가족들과 축하를 하며 조용하게 넘어갔으니 말이다.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을 해봐도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런 켄마의 속마음을 읽은 것인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짓던 히나타가 입을 뗐다.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는데! 지금 갑자기 드는 생각 같은 건 없어?”
기필코 듣고 말겠다는 듯이 반짝이는 두 눈에 얼떨떨한 모습을 내비췄다. 히나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때면 켄마는 조금 낯부끄러웠다. 자신의 내면이 타인에게 내비춰지는 것에 대한 내성이 생기지 않은 탓이었다. 얼굴을 바짝 들이댄 채로 물어오는 히나타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볼을 긁적이던 켄마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냥.”
그토록 기다리던 대답이 떨어질 땐가. 히나타의 두 눈이 조금 전보다 더 반짝이고 있었다.
“누워서, 이런 하늘을 보고 싶어.”
“에- 그게 다야?”
“쇼요랑.”
잠시 실망한 기색을 내비추던 히나타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소중한 것을 함께 하고 싶은 대상이 자신이란 것에 잠시 놀랐지만 아무렴 좋았다. 켄마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위치에 놓인 것인지 잘 알 수 있었으니까.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던 히나타가 켄마의 목을 감싸 안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꼭 그러자! 곁에 있어줄게.”
아끼던 게임기를 잃어버려 울적하던 켄마를 안아주던 그 옛날의 히나타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제 목을 세게 끌어안은 히나타의 등을 살며시 감싸 안으며 가만히 생각했다. 과연 내가, 이 어둠이 널 앗아가기 전에 널 품어도 될까. 빛처럼 빛나는 너와 함께 있어도 되는 걸까. 두 사람의 밤은 점점 깊어 갔다.
* * *
히나타는 켄마에게 쿠로오라는 친구가 생기기 전부터 함께 해왔던 이웃사촌이었다. 켄마가 태어나고 그 다음 년도에 히나타가 태어나면서 한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았던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형제처럼 붙어 다녔다. 히나타가 이사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히나타가 이사를 가기 전에 했던 약속이 있었다.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다고.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켄마가 다니고 있다던 네코마 고교에 진학했건만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 켄마의 흔적이 온 데 간 데 없다.
시무룩한 얼굴로 그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그 와중에 창가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보던 켄마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돌아왔네. 이틀 째, 특정한 시간만 되면 하염없이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켄마가 이상해서 반 친구들이 물어왔지만 시원스러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아리송하게 돌아왔다는 말만 내뱉었을 뿐이었다.
쇼요는 언제나 날 찾아왔으니까, 이번에도 내가 있는 곳까지 와주지 않을까.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자신의 흔적조차 찾지 못한다면 스스로 얼굴을 내비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켄마의 예상에 들어맞게도 히나타는 켄마가 몸담고 있는 배구부로 당당히 들어섰다.
“……켄마!?”
“쇼요.”
“켄마!”
반가움에 선배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은 모양인지, 히나타는 예의 그 미소와 함께 켄마를 와락 끌어안았다. 배구부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켄마에게 살갑게 대하는 이가 드물었던 탓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타인의 눈에 띄는 것을 꺼려하고, 남이 자신을 건드리는 것을 싫어하는 켄마가 햇살 같은 아이를 마주 안아주는 모습에 모두들 휘청거렸다.
“응. 오랜만이야.”
귓가에 크게 울려 퍼지는 히나타의 호들갑 섞인 목소리마저 반가웠다. 정말 돌아왔구나. 햇살처럼 따스한 냄새가 켄마의 코끝을 간질이고 있었다.
* * *
늘 혼자 다니거나 가끔씩 쿠로오와 등하교를 하던 켄마의 하루가 히나타의 입학과 동시에 뒤바뀌었다. 예전처럼 켄마가 살고 있는 집의 맞은편으로 이사를 온 탓에 두 사람은 언제나 함께였다. 히나타와 함께 있을 때면 도로변을 걸으면서도 놓지 않고 끊임없이 재생하던 게임기도 가방에 넣은 채 그의 말을 들으며 걷고는 했다. 그 모습에 다들 깜짝 놀라며 어디 아픈 게 아니냐고 묻는 것에 다소 귀찮음이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쇼요가 눈을 보면서 대화하는 걸 좋아해.
그것만이 문제는 아닌 듯 했다. 켄마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냐는 얼굴로 되물어 왔지만 어디서부터 짚어나가야 할지 몰라서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솔직히 말해서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데 눈을 바라보지 않고 하는 대화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 사람은 몹시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이유만으로 게임기를 손에서 놓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천천히 그리고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서로의 삶에 스며드는 모습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누군가를 챙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켄마가 히나타의 안위를 걱정하고, 히나타는 그런 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의 컨디션을 간파하고 있었다. 언제 한 번은 추위에 떠는 히나타에게 제 져지를 건네주며 쓴 소리를 내뱉는 켄마의 모습도 봤다. 아마 그 때가 연습이 끝나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였을 거다. 땀이 식으니 추워진다고 몸을 부르르 떠는 히나타를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모습에 모두들 숨어서 박수를 치곤했다. 저 꼬맹이가 대단하긴 대단하네. 모두 이런 생각을 했다.
눈치가 없는 히나타라도 켄마가 자신을 얼마나 챙겨주는지 모를 리가 없었던 탓에 항상 미안했다. 당연하다는 듯 받고 있긴 하지만 자신도 켄마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던 탓에 안절부절 못하며 그의 곁을 맴돌았다.
‘쇼요, 정신없어. 왜 그래?’
‘있지. 켄마.’
켄마한테 받기만 한 것 같아. 나도 뭔가 해주고 싶은데……. 우물쭈물 하다 내뱉은 말에 켄마는 히나타를 한동안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한숨을 짧게 내쉬며 말을 이었다.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짧은 한 마디였지만 모든 의미가 담겨 있었다. 히나타는 그 의미를 전부 파악하지 못해 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켄마로서는 가장 잘한 대답이었다. 낯 뜨거운 말에 내성이 생기지 않은 켄마의 속에는 내뱉지 못한 말들이 꾹꾹 눌러 담긴 채, 제 존재를 드러냈다. 가장 처음으로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상대라고 하면 무슨 반응이 돌아올까. 그 옛날처럼 해사하게 웃어줄까. 아니면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돌아설까. 예나 지금이나 겁이 많은 켄마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한편, 켄마의 관심을 온 몸으로 받고 있는 히나타는 요즘 몹시 바빴다. 1년에 딱 한 번만 돌아오는 가장 소중한 날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켄마의 생일이 1주일 앞으로 돌아왔다. 분주한 마음으로 배구부 선배들과 친구들에게 우는 소리를 내며 의견을 물었지만 대답은 한결 같았다.
‘네가 더 잘 알지 않을까?’
몰라서 묻는 건데 전부 같은 대답만 하는 탓에 난감했다. 핼쑥해진 얼굴로 생각을 하는 그 와중에 켄마의 생일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곧 있을 경기에 몸을 혹사시킬 정도로 연습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생각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침대에 누우면 기절하듯 잠들 수 있었지만 잠들었다가는 좌절을 맛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베란다 문을 열었다. 머리를 식히는 데는 맑은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만큼 좋은 약이 또 없었다. 그리고는 바라본 하늘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일어나기 싫다며 침대에 누운 채로 미적거리는 켄마를 데리고 나와 함께 바라보던 하늘과 닮아있었다.
까만 밤하늘에 수놓인 별들이 예뻐서 입을 벌린 채로 한참 동안 감상하던 히나타의 머릿속을 재빨리 스쳐지나간 것이 있었다. 그 때 켄마가 그런 말을 했었지. 끙끙 앓던 것과 달리 손쉽게 생각해낸 생일 선물에 히나타의 얼굴 가득 화색이 감돌았다.
* * *
‘켄마- 금요일에 우리 집에서 놀다가 같이 잘까?’
‘그래.’
며칠 전부터 금요일을 노래하던 히나타가 당일이 된 지금 우울한 기색을 내뿜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등교할 때부터 오늘 집에서 뭘 하고 놀지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놨을 텐데 그마저도 없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입술을 비죽 거리기 바빴다. 혹시 비와 원수 사이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울해보였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 난 뒤에도, 부 활동을 마친 뒤에도 한숨을 푹푹 내쉬는 탓에 모두의 걱정 어린 시선이 켄마를 향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항상 밝던 애가 저 모양이냐고 물어왔지만 켄마도 모르는 탓에 어깨를 으쓱였다. 언뜻 들은 말을 더듬어보자면 매일 같이 화창하다 오늘 비가 쏟아질 건 뭐냐는 듯 투덜거리는 말이 이어졌던 것도 같다. 답지 않게 투덜거리는 히나타를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히나타 집에 도착한 뒤였다.
“켄마.”
“응.”
침대에 엎드려서 발을 동동 구르던 히나타가 벽에 기댄 채 휴대폰을 만지는 켄마를 향해 얼굴을 드밀었다. 익숙하단 듯이 제 얼굴 가까이에 다가온 히나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켄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궁금증이 피어나던 찰나 한숨 어린 히나타의 말이 툭 내뱉어졌다.
“저 비는 언제쯤 그칠까?”
아, 그 때문이었나. 혹시 몰라서 확인해둔 일기예보를 떠올리던 켄마가 입술을 달싹이다 말문을 열었다.
“글쎄. 내일까지는 온다고 했던 것 같아.”
그 말에 더욱 깊어진 한숨을 푹푹 내쉬던 히나타가 별안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쌩하니 사라진 히나타의 흔적을 찾던 켄마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조금 전까지 귓가를 두드리던 빗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침대에서 내려던 켄마가 베란다로 향했다. 커튼이 꼼꼼하게 쳐진 베란다로 다가서서 조심스럽게 걷자마자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그토록 세차게 내리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감쪽같이 그쳐 있었다. 파란 하늘을 볼 수 없게끔 막고 있던 먹구름도 전부 걷힌 뒤였다.
“켄마, 뭐해?”
화장실을 다녀오던 히나타가 방문을 닫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비가 들어 치지 않으려나. 그 생각을 하던 찰나에 켄마의 말이 들려왔다.
“쇼요. 비 그쳤어.”
“정말?!”
눈에 띄게 좋아하는 모습에 짧게 혀를 찼다. 오늘 아침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본 표정 중 가장 밝은 얼굴이었다. 비가 그친 바깥 날씨에게 우선순위가 밀려버린 느낌이 썩 달갑지 않다. 불만이 어린 얼굴로 히나타를 붙잡던 찰나였다.
“쇼요, 오늘 하루 종일―”
“으악. 켄마 잠시만!”
제대로 된 문장이 되지 못하고 공중으로 흩어지는 제 말을 주워 담지 못한 켄마가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따라 정말 이상하다니까.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 히나타가 급하게 방을 벗어났다. 배탈이라도 난 것은 아닐까. 히나타의 알 수 없는 행동들 때문에 의문이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저 밤하늘을 보면서 마음을 추슬러야지. 심호흡을 하며 별이 수놓아진 하늘을 보던 켄마의 입가에 미소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비가 그친 뒤의 하늘이라 그런지, 더욱 깨끗하고 몹시 밝은 빛이 온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한동안 넋 놓은 채 하늘을 감상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
갑작스럽게 꺼진 방 불에 놀란 켄마가 두리번거리다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뭐야. 케이크에 불을 붙인 채, 방 안으로 들어오는 히나타의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밤바람 때문에 촛불이 꺼질까 싶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유리 위를 걷는 것 같았다. 그리고 케이크를 보며 깨달았다. 오늘 내 생각이었구나 하고. 달력을 보고 살지 않는 탓에 오늘이 며칠이나 됐을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히나타가 아니었다면 집으로 돌아가 맞이했을 생일상을 보며 놀라고 있었을 터였다.
“켄마, 생일 축하해!”
“……고마워.”
촛농이 녹아떨어지기 전에 얼른 촛불을 불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불이 붙었냐는 듯이 캄캄해진 주변에 해맑게 웃은 히나타가 책상 위에 케이크를 올려두고 베란다로 다시 나왔다.
“가장 소중한 날, 나랑 같이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건 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것 때문에 하루 종일 우울해 보였구나. 이제야 히나타의 행동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히나타다운 생각에 마음이 벅차오르던 켄마가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옥상에 가고 싶어도 바닥이 축축해서 안 되겠지? 이렇게 베란다에서 보는 거라도―”
고개를 푹 숙인 켄마에게서 시선을 돌린 히나타가 하늘을 바라보며 우물쭈물 말을 이어갔다. 날씨가 이렇게 안 좋을 줄 알았으면 다른 선물을 준비했을 텐데. 재회한 뒤 처음 맞이하는 생일을 이렇게 보내게 된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하늘이 맑았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에 입술을 비죽 거리던 찰나였다. 미동도 없이 서 있던 켄마가 히나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왔다.
“켄마?”
조금 전부터 상태가 안 좋아 보였던 켄마가 걱정스러워진 히나타가 호들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혹시 갑자기 아픈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자신이 준비한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닐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불안함에 떨던 히나타의 귓가에 들려온 켄마의 목소리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몹시 차분했다.
“쇼요를 다시 만나게 돼서 정말 좋아.”
진심어린 한마디에 두 볼이 붉어진 히나타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쿵쿵 뛰는 심장소리가 켄마에게 전해지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그건 무리겠지. 어깨에 기대고 있는 켄마의 머리가 신경 쓰인다.
“앞으로도 내 생일에 함께 해줄 거지?”
“당연하지!”
“그럼 그걸로 난 충분해.”
켄마가 말을 할 때마다 전해지는 울림에 온몸이 간지러웠다. 싸늘한 밤바람이 두 사람을 감싸들었지만 서로에게 체온을 맡긴 탓에 춥지 않았다. 켄마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제 목을 괴롭히는 탓에 간지럽기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