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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머핀 (@amymuffinnn)

 오랜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이야기들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곧 이곳에 잠든다. 한 사람당 오직 하나씩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 허락되었다. 우리는 지금 먼 여정을 떠나고 있다. 이건 그 여정의 시작이기도 하다. 수백 년간의 동결. 끝없는 꿈속으로 가라앉는 것이다. 그들은 이 캡슐 안에서는 뇌의 활동이 거의 정지되므로 꿈조차도 꾸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되도록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수백 년 동안 꿈조차 꿀 수 없다면 그건 너무 외로운 일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내일은 나의 첫 성년이 되는 생일이다. 하지만 이 캡슐 안에서 내일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어른이 되기 전에 이곳에 영원히 박제되는 셈이다.

 

 쇼요는 말했다.

 

 "하지만 켄마, '박제'라는 말은 틀렸어. 우리는 다시 깨어날 거니까."

 

 물론 그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냉동 인간은 정말 일시적인 잠을 는 것뿐일까, 아니면 사실상 죽음의 다른 말일 뿐일까?

 

 우리는 인류의 다음 정착지를 향해 가고 있다. 그곳에 우리 같은, 복잡한 기계를 다룰 줄도 모르고 무언가 쓸모있는 물건들을 만들어 낼 수도 없는 무력한 소년들이 함께 가는 이유는 딱 하나뿐이다. 그들은 우리가 '미래'라고 말했다. 젊고, 건강하니까. 그곳에 도착하면 남은, 또 다른 소녀들과 사랑을 해서 새로운 아이들을 낳으라는 의미인 거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세상에는 인류를 유지하는 방식으로만 행해지지 않는 사랑도 있다는 것도. 만약 우리가 도착할 다음 정착지가 우리의 사랑을 배제하는 곳이라면, 차라리 그런 정착지는 없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쇼요와 나는 그런 말을 굳이 꺼내는 대신, 가만히 입을 다물고 서로를 보며 쉿,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씩 웃었다. 어쨌든, 우리는 그곳의 미래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함께 미래에 도착할 것이다. 결국 차가운 모습으로 만나든, 정말로 눈을 뜨든. 어느 쪽이든 간에.

 

 "깨어나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줄게."

 

 쇼요가 웃으며 말했다. 그곳에 도착하면 지구에서 쓰던 날짜들도 더 이상은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곳의 첫 하루를 나의 생일날로 정하자고 했다. "말하자면, 그건 우리의 내일이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곳에서 우리는 모든 것들을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도착한 곳에 있을 문명의 흔적은 오직 이 우주선과 이곳에 실린 몇 안 되는 도구들뿐, 그마저도 새로운 환경에서 효력이 있으리라는 확신은 없다. 아마 인류의 역사는 선사시대부터 다시 재현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작고 여리고 연약한, 심지어 아이를 낳을 수도 없고 누군가를 지킬 수도 없는 우리는 그곳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라도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 건 행운일까, 아니면 불행의 유예일까.

 

 그래도 쇼요를 보면 나는 언젠가 깨어나고 싶어진다. 깨어나서, 다음 생일을 맞고 싶어진다. 우리가 도착할 곳이 어디든, 왜인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반짝이는 눈이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살아남아서 어른이 되고 싶다. 우리는 불안하고 흔들리는 존재들이다. 우주를 헤매는 작은 캡슐에 의존해서 아주 느린 숨을 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언젠가 눈을 뜬다면. 우리에게 입맞춤을 할 다음 순간이 있다면. 그게 완전히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거라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제는 정말로 마지막 기록만이 남았다. 긴 이야기를 남길 수는 없다. 그랬다간 모든 사람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해질 테니까. 그러니까 한 사람당 오직 하나씩의 이야기. 만약 우리가 실패해서 미래에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여기에 남겨진 기록은 인류가 한때 이곳 진공 속에 존재했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우리는 동결 캡슐에 몸을 완전히 뉘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모니터에 뜬 글자를 본다.

 

 [한 가지의 이야기를 남기세요.]

 

 우리는 떠나도 단 하나의 이야기는 살아남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니라 쇼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한다. 마지막까지 우주 어딘가에 남겨져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그건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레코드를 들고 이야기한다. 사랑은 아주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여러 방식으로 여러 방향을 향한다는 것. 쇼요는 그 많은 종류의 사랑을 모두 할 줄 아는 드문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중 한 종류의 사랑이 나에게 선명히 쏟아지고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말한다. 언젠가 우리가 미래를 만난다면, 그곳 미래에는 쇼요 같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의 빛을 나누는 사람들. 손을 내미는 사람들. 세계의 빛을 발견하는 사람들. 어떤 외로움과 비정함 가운데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 타임캡슐이 처음으로 열렸을 때, 그렇게 따뜻했던 한 사람의 존재와, 그런 그 존재를 내가 사랑했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기억해주기를 바랐다.

 

 내 기록을 들으며 쇼요는 웃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그리고 난 정말로, 네가 필요할 거야."

 

 쇼요는 때로 나에게, 내가 쇼요와 다르기 때문에 좋아하는 점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었다.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고, 선뜻 말을 걸지 않고, 그를 기다려주는 것. 빠르게 눈치채지만 느리게 다가서는 것. 쇼요는 환한 사람이었고 오직 내 앞에서만 울었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지만, 그건 내게만 보여주는 것이라 했다. 나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했다. 때로 쇼요는 나를 밤과 새벽의 공기로 비유해주었다. 그 말의 정확한 의미를 묻지는 않았지만, 나는 쇼요가 나에게서 자신이 갖지 않은 어떤 부분을 찾아내 준다는 사실이 좋았다. 햇볕이 나를 비추어 내가 가진 반짝이는 조각들이 함께 빛나는 것 같았다. 그 조각들을 들여다보면, 반짝이는 쇼요가 보였고, 그 옆에서 웃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잠이 들 시간이다. 내가 캡슐로 들어가면, 쇼요가 마지막 기록을 남길 순서였다. 나는 캡슐의 등받이에 몸을 붙이고 눈을 감으면서 쇼요가 남기는 기록을 듣는다. 딱 세 마디의 기록이다.

 

 [켄마, 생일 축하해. 그리고 어른이 된 걸 축하해! 지금부터 노래를 불러줄게.]

 

 삑- 울리는 소리와 함께 레코드가 끝난다. 그리고 쇼요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어딘가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우리가 미래에 도달할 거라고 믿게 된다. 그곳에는 달콤한 생일 케이크도, 폭죽도, 꼬깔 모자도, 친구들의 다정한 축하 인사도, 선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일을 맞아서 틀림없이 기쁠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행복할 것이다. 쇼요를 다시 보게 된다면 엉엉 울지도 모른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조금 울게 되는 것이라던가. 그러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수백 년 동안 쇼요를 다시 만나는 긴 꿈을 꿀 것이다.

 

 곧, 감은 눈꺼풀 위로 쏟아지던 빛이 사라지고, 완전한 어둠이 깃든다. 쇼요의 다정한 목소리가 속삭인다.

 

 "그러니까 미래에서 만나자. 켄마."

 

 이제 내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쇼요를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어쩐지 나는, 언젠가 정말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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